대만 레거시 반도체 ‘부흥’, AI 공급망 병목의 역설적 수혜자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집중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최첨단 공정으로 이동하면서 대만 반도체 생태계에 뜻밖의 반사이익이 흘러들고 있다. 첨단 칩에 시선이 쏠려 있지만, TSMC 그늘에 가려졌던 레거시 메모리·후공정·테스트 분야까지 낙수효과가 확산 중이며, AI 열풍이 공급망 전반에 병목을 만들어 대만 중소·중견 업체들의 협상력과 시장 지위를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수혜가 가장 가시화된 영역은 레거시 메모리 시장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빅3가 수익성이 높은 HBM과 DDR5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면서, DDR3·DDR4, SLC 낸드 등 범용 제품의 공급 여력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 공백을 난야테크놀로지와 윈본드가 흡수하고 있다. 난야는 지난 3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60% 급증하며 레거시 D램 가격 상승의 대표적 수혜주로 부상했다.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 플랫폼의 LPDDR 공급망에 난야가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되며 시장 내 위상도 달라지는 모양새다. 윈본드는 산업용·차량용 기기에 쓰이는 SLC 낸드와 노어플래시 공급 부족의 수혜 업체로 떠오르며 글로벌 낸드플래시 업체들의 고적층 3D 낸드 투자 집중 사이를 공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업체의 부활을 기술 혁신의 결과라기보다 메모리 빅3의 고부가 제품 집중이 빚은 ‘역설적 호황’으로 해석한다. 난야와 윈본드는 20나노대 안팎의 레거시 공정 중심 구조로 불황기마다 수익성 한계를 노출했던 업체들이다. 글로벌 고객사들이 이들 업체의 물량 확보에 몰리는 것은 범용 제품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시장이 최고 성능보다 안정적 공급을 우선시하면서 소외됐던 대만 레거시 제품군의 전략적 가치가 재편되고 있다.